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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태의 노가다 일기] 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2) P 목사님
어제는 철거 현장에서 현직 목사님과 일했습니다. 전현직 불문 ‘사’자 들어가는 직업 가진 노가다는 처음입니다. 대규모 건설현장이든 일용직 막노동이든 노가다의 인적 구성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전문 노가다 (이 숫자가 가장 많고, 또 대체로 나이가 많습니다)
2. 사업 실패 또는 경력 단절자. 그리고 퇴직자
3. 연극배우나 작가, 농부 같은 생활이 어려운 직업군의 부업
4. 군대 가기 전 또는 대학교 방학 때 알바하는 청년
5. 동포든 한족이든 주로 중국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
2번 항목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분들이 중소기업 사장님들과 가게 문 닫은 자영업자들입니다. 제가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말을 걸어본 수백 명의 노가다들 중에서 대기업 생산직 출신은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제가 스무 살 즈음인 1980년대 후반에는 대기업 생산직이나 노가다가 비슷한 처우를 받았는데, 이제는 신분이라고 부를 만큼의 격차가 생겨버렸습니다. 대기업 생산직보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노가다와 더 친화성이 있는 현실입니다.
현장에서 처음 만난 ‘사’자 직업, 목사님을 만났다
어제 뵌 분은 서울 성북구 종암동 C 교회의 P 목사님입니다. 전현직 불문 ‘사’자 들어가는 직업 가진 노가다는 처음입니다. 어려운 가정 환경 → 돈을 벌면서 학창생활 → 대학 졸업 후 화장품 회사 회사원 10년 → 목회자 공부 → 오랜 부목사 생활 후 현재 목사. 이런 삶의 이력을 갖고 계십니다.
현재 교회 신도는 90명으로, 120명 정도가 목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 ‘개척교회’라고 부르는 건 교회 설립 시기가 기준이 아니고 신도수 300명 이하면 그렇게 부른다고 하네요. (제가 아는 다른 목사님에 따르면 개척교회는 설립시기를 기준으로 하고 신도 수가 적은 교회는 ‘미자립교회’로 부른다고 하시네요.)
이렇게 낮에는 노가다를 하시고 수요일 밤 예배와 일요 예배 설교 준비를 하십니다. 교인들 집 찾아가는 ‘심방’도 하시면서 거의 초인처럼 살고 계셨습니다. 교회에 들어온 헌금은 교회 공적인 일로 쓰고, 목사님 사례비는 불우이웃을 돕는데 쓴다고 합니다. 목사님 자신은 이렇게 노가다 뛰면서 말입니다!
어제 같이 일하면서 이 사람이 성인(saint) 아닌가 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1. 힘든 일 어려운 일 귀찮은 일을 나서서 합니다. 현장 일 하면서 이러는 거 쉽지 않습니다. 성실하고 일도 아주 잘 합니다.
2. 어제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자기는 일도 안 하면서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고 말도 이랬다 저랬다 했습니다. 보통 노가다들이 갔을 때 대판 싸우거나 일하다 말고 돌아왔을 부류였습니다. 목사님이 그 업자와 일하는 사람들을 요령 있게 잘 구슬리고 다독여서 일이 진행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업자와 아는 사이라 일용직 중에서는 리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저도 현장에서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에 익숙한데도 어제는 참기 힘들 정도였는데, 목사님이 계셔서 하루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3. 목사님, 저, 21살 청년 이렇게 3명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일도 잘 못할 뿐만 아니라 성의 없이 깨작깨작하고, 남들 일하고 있는데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등 눈치가 없고 의욕도 없는 유형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사람이 눈에 띄면 현장에서는 크게 한 소리가 나옵니다.
처음에 목사님이라는 호칭을 듣고 그 청년에게 어떻게 하나 호기심 삼아 지켜봤습니다. 한 번도 인상 안 쓰고 계속 미소 띤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그 청년을 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그 청년 몫까지 자신이 일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저와 51살 동갑인데, 고2 쌍둥이 아들의 아빠입니다. 아들들하고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합니다. 목사님과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매주 일요일 11시에 시작한다는 일요예배에 한 번 가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은 일요예배도 한번씩 한강변 같은 곳에서 신도들과 야유회 가서 보고 그러신다네요. 목사님이 현장에서 다치지 않고 건강하고, 교회 신도수도 늘어나기를 기원합니다.
글 / 권병태
(happitice@hanmail.net)| 작성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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