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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밖의 예술가들 ②] 중공업의 작가, 조춘만
2014년 한 권의 사진집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조춘만의 중공업(워크룸프레스)> 커버는 안전모와 작업복 차림의 한 중년의 남자가 먼 곳을 응시하며 서 있는 강렬한 이미지를 앞세우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사진집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춘만 작가다.
초졸 학력으로 조선소 취부사로 취직한 후 배관 용접사로 일하다가 사진학과에 진학해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산업 전문 사진작가'가 됐다. 이 책은 산업 현장 사진집인 동시에 산업 현장의 일원이었던 조춘만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산업 현장 전문가에서, 지금은 현장을 카메라로 담는 전문 작가가 된 그를 직접 만나봤다.
Q, 배관 용접을 했다고 들었다.
어렸을 때 아주 가난한 집에서 4남 3녀 중 6번째로 태어났다. 중학교에 가는 것도 벅차, 자연스럽게 18살에 울산 현대중공업 소조립 하청업체에 취부사(배를 만들기 위해 철판 조각을 도면에 맞게 제작하는 일)로 일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이 많아지면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알려졌다. 그때 취부사는 뽑지 않고, 배관 용접 일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들었다.
어깨너머 곁눈질로 용접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오전과 오후, 야간에 10분간 쉬는 시간이 있어 그 짧은 틈까지 이용해 연습을 거듭했다. 그래서 정유공장, 석유화학 등의 현장을 거치며 일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 철을 소재로 한 용접 작업을 했는데, 아크와 TIG 방식의 배관 용접을 주로 했다.
Q. 사진은 어떻게 시작했나?
1982년도에 사우디에서 귀국할 때 니콘 FM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때부터 취미로 사진을 찍게 됐다. 그러다 1994년도에 청소년 복지회관에서 사진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본 후 40대 중반의 나이에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Q. 처음부터 산업 현장을 찍은 건 아니라고 했는데.
첫 촬영을 나간 곳이 울산 부곡동이었다. 공단 인근에 있는 철거 지역이었는데, 공단에서 일할 때 살던 동네라 익숙했다. 부곡동을 시작으로 용연동, 황성동, 우봉리 등 공단 인근 철거 지역을 약 8년 정도 카메라로 담았다. 공단은 계속 일을 해왔던 곳이고, 촬영으로 근처에 갈 일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업 시설물만을 집중해 찍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산업 시설물 그 자체에 눈길이 갔다. 충분히 예술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더라. 소형 카메라로 담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아 4X5인치 카메라를 산 것도 이때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장의 이미지는 낯설다. 굳이 덧붙이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런 공장의 어떤 점 때문에 작가는 카메라를 든 걸까. <조춘만의 중공업>에서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공장의 압도적인 규모를 강조하기 위한 사진이 아닌 철저히 기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이 감정은 산업 현장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애호 감정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한다.
Q. 일이 아니라 촬영을 위해 산업 현장을 찾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현장은 거대하다. 오히려 사진은 그걸 다 담아내지 못하기도 한다(웃음) 일하러 다닐 땐 그 현장의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던 곳인데 다시 가고 싶은지 묻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애착이 갔다. 예를 들어, 용접사로서 내가 직접 만들었던 현장의 강철 구조물을 보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그러면서 과거에 들었던 “용접이 예술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다.
Q. “한 곳을 찍기 위해 스무 번 이상 가”기도 했고, "감시의 눈길을 피해 수 킬로 카메라를 들고 뛰며 숨어 다니”기도 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친구가 상무 이사로 일하는 석유화학에 촬영 허가를 받은 적이 있는데, 두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 최상의 작업 환경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찍으려고 하는 건 어떻게든 찍는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2년 동안 100번 넘게 찾아가 촬영한 작품이 있다. 물론 그 사진만 완성하기 위해 간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갔는데도 원하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결국 경비원 허락 없이 아파트 옥상 물탱크 위에서 다섯 번 정도 촬영 시도 끝에 성공했다.
Q. 작업할 때 특별한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작품도 쉽게 나온 것이 없다. 그만큼 수많은 경우를 생각해 탄생한 작품들이다. 사진의 구도, 촬영하는 날 날씨 등을 철저하게 계산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날한시에 찍은 작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많이 찍는 것보다, 한 컷을 찍더라도 정확하게 최상의 퀄리티로 찍으려 한다. 소형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게 아니다 보니 사진을 많이 찍을 수는 없다. 3장을 찍더라도 모두 전시에 걸 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로 찍으려 한다.
Q. 촬영장소를 붙이지 않고, 암호처럼(?) 제목을 붙인 것도 이 떄문인가?
그렇다. 보면 알 사람은 알겠지만, 그 현장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제목은 촬영 주제에 따라 다른데 'IK11238'의 경우, IK는 인더스트리 코리아(Industry Korea)라고 한국에서 촬영한 산업 시설의 약자다. 그 뒤에 11은 촬영연도를, 그 뒤는 촬영 당시 카메라가 붙여준 넘버다.
Q. 사람들 눈을 피해 촬영하는 노하우가 생겼을 거 같다.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촬영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게 어렵고, 늘 들키면 어떻게 도망가야 할지 생각한다. 예전부터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었고, 요즘엔 CCTV도 무섭다. 산이나 아파트 옥상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아파트는 이제 경비원이 의심한다. 주민인 척 위장해서 촬영하러 가야 하고 촬영할 때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관점은 기존의 사진이 하지 않았던 산업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시각적 표상을 만들고자” 하는데 이는 이전의 산업 사진 영역과도 다르다. 산업 홍보나 프로파간다 이미지에 집중돼 있을 때, “디드로의 ‘백과 전서’나 인체 해부도를 작성한 의사 베살리우스”의 것과 같다고 평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게 압도적이면서 강렬하고, 산업현장의 거대하면서 압도적인 느낌이 살아 있다. 늘 전혀 다른 산업 현장의 모습을 다뤄왔다. 그리고 그의 다음 작업 역시 현장이었다.
Q. 사진 작업을 보고, 극단에서 퍼포먼스도 제안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13년 7월에 극단 오시모시스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에 가게 됐다. 프랑스 샬롱 거리극 축제에서 ‘철의 대성당’에 참여했다. ‘철의 대성당’은 한국 등 아시아가 주도하는 철강 산업의 역사를 퍼포먼스로 표현한 작품으로 용접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Q. 올해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나?
프랑스, 룩셈부르크, 독일의 철강 산업현장을 촬영했었다. 4년 동안 촬영한 내용을 전시와 사진집을 통해 올해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고은미술관의 '부산 참견錄' 프로젝트(한국의 중견 사진작가 중 한 명을 선정해, 1년 동안 부산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촬영한다. 결과물은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에 선정 돼 부산 지역의 산업시설을 촬영하고 있다. 내년 5월에는 프랑스 리옹에서 초대개인전도 예정돼 있다.
Q,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나?
기계는 생명을 갖고 있다. 촬영에 몰입하면 기계가 살아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화를 한다는 느낌도 든다. 삶이 존재하는 한 이 작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산업 현장을 담은 작품을 보여줄 생각이다.
글 │ 정은주 기자(jej@i-d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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