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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 당장은 사출금형 대체 못 한다"
회사명 | 쓰리디박스 | 업종 | 제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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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인천 계양구 |
"사출금형 회사에 최종 합격했는데 고민이네요. 3D프린터가 상용화되면 플라스틱 제품은 그냥 집에서 만들어서 쓸 텐데… 제조업 판도가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요? 사출금형 회사 전망이 괜찮을까요?" 2014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3D프린터로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기존의 사출금형 시장은 전망이 어둡지 않겠느냐는 고민이다.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전에 사출금형의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간단히 말하면 틀(금형)에 소재를 부어 제품을 뽑아내는(사출) 생산공정이다. 볼록한(凸)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상판과 하판으로 이뤄진 오목한(凹) 틀에 액체 상태인 플라스틱이나 철 등의 소재를 부어 굳힌다. 제품을 다듬기 위해 재가공을 거치기도 한다.
3D프린트는 이 모든 과정이 한번에 이뤄진다. 설계도에 해당하는 모델링만 있다면 금형 없이도 볼록한 제품을 바로 만들 수 있다. 온라인에 배포돼 있는 무료 모델링을 이용해도 되고, 전문업체에 의뢰해 원하는 디자인의 모델링을 얻을 수도 있다. 산업용 3D프린터는 수천만원에 이르지만 집에서 취미로 사용할 제품이라면 수십만원대로도 살 수 있다. 3D프린터가 제조업의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향후 20년 내 3D프린트가 사출금형을 대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3D프린터 제조사 3D박스 정선필 대표를 만나 업계의 생생한 얘기를 들어봤다.
3D박스 정선필 대표.
Q. 3D프린터가 제조업 현장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옵니다.
"언론에서 너무 띄우고 있는 거예요. 3D프린터로 모든 걸 대체할 수는 없어요. 3D프린터는 소재를 쌓는 기계일 뿐이에요. CNC머신이 제품을 깎아낸다면 3D프린터는 쌓아 올리는 거죠. 3D프린터로 제품을 대량샌상하기엔 아직 속도가 너무 느려요. 정교함도 떨어지고요 향후 20년 내로는 3D프린터가 기존 생산방식을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고 봐요. "
Q. 그럼 산업현장에서 3D프린터의 포지션은 뭔가요.
"가장 큰 장점은 금형 없이도 소량으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거죠. 금형으로 생산하려면 제품을 감싸는 틀, 앞판, 뒷판, 서포트 기둥, 코어 모두 설계한 다음 뽑아내야 해요. 제품 하나를 만들자고 그 주위 것들을 다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죠. 반면 3D프린터는 모델링만 있으면 딱 그 물체만 만들어낼 수 있어요"
Q. 3D프린터 발전 방향은 어떤가요.
"처음과 비교하면 정교함도 높아졌고, 소재도 더욱 안전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죠. 차츰 나아지고 있어요"
Q. 주로 어떤 업체에서 제품을 구입하나요?
"제조업체들은 모두 해당돼요. 컵을 만들 거라면 여러 가지로 모델링을 만들어본 다음 3D프린터로 출력해서 미리 보는 거죠. 그 중 괜찮은걸 사출금형으로 대량생산하는 거고요.”
Q. 3D박스 제품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디자인이요. 보통 산업용 장비들은 디자인이 엇비슷한데, 디자인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원가 차이는 별로 안 나거든요. 소비자들은 같은 스펙인 장비 두 개가 있다면 조금 더 예쁜 걸 골라요. 출시 초기부터 제품이 팔린 것도 그 덕분이 아닐까 싶네요.”
Q. 처음부터 3D프린터를 제조해서 판매한 건가요?
“처음엔 제가 가지고 있는 3D프린터로 시제품을 뽑아주는 일로 시작했어요. 취미로 모으다 보니 10대까지가지고 있었거든요. 개인사업자를 낸지 3개월 만에 첫 매출이 났어요. 8만원짜리 시제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죠. 사업을 하다 3D프린터 제조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Q. 매출 현황은 어떤가요.
"법인 설립을 한 첫 해인 2015년엔 1억5000만원, 2016년엔 5억정도 했어요. 올해는 좀 더 풀리지 않을까 싶어요. 2017년 들어 오늘(1월10일)까지만 매출이 1억5000만원정도 돼요. 올해 목표는 20억이고요"
Q.지난해 LG화학, 삼천리자전거와 콜라보레이션 영상도 찍으셨다고요.
“네, LG화학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OLED 조명 스탠드를 3D프린터로 만드는 영상을 찍었으면 좋겠다고요. 원래는 '로킷'이라는 국내에서 가장 큰 3D프린터 업체에 요청했었는데, 그쪽에서 못 하게 되는 바람에 우리한테 넘어온 기회였어요. 당연히 우린 하겠다고 했죠. 비용도 LG화학에서 다 댔고요. 삼천리자전거에는 LG화학과 진행한 영상을 보여주며 저희가 먼저 요청을 했어요. 그쪽도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3D프린터로 자전거 폴대를 생산한 다음 주행하는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3D박스와 LG화학의 콜라보레이션 영상. 3D프린터로 OLED 조명 스탠드를 제작했다.
Q. 요 몇 년 사이 3D프린터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졌어요. 정부에서도 키우겠다고 나섰고요.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어떤가요?
" 3D프린터 제조사만 20~30군데나 생겼었어요.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요."
Q. 실패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정부 지원금을 노리고 3D프린터를 건드렸던 곳들이 실패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잘 된다고 하니 호기심에 ‘나도 한번 팔아볼까’ 하는 마음이 컸던 거죠. 그 이전부터 시작한 멤버들은 아직까지 건재해요.”
Q. 사용자가 직접 조립할 수 있는 3D프린터를 출시할 예정이라고요.
“누구나 쉽게 조립할 수 있는 DIY 3D프린터를 만들 거예요. 초등학생도 조립할 수 있을 만큼 쉽게요. 조립 과정을 유튜브에 공유해 알려주기도 할 거고요. 가격은 60~70만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스펙은 3D박스가 500만원에 팔고 있는 장비와 거의 비슷해요.”
Q. 지금까지 팔던 500만원짜리 제품은 의미가 없어지겠는데요.
“재정비하는거죠. DIY 3D프린터가 나오면 500만원 짜리는 없애고 제품군을 두 축으로 나눌 거예요. 2000만원짜리 산업용 고가제품과 60~70만원짜리 저가제품이요. 3D프린터 업계의 반항아랄까요, 싸고 저렴하게 샤오미 같은 느낌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기존 업체들이 어떻게 반응해올지 궁금하네요."
Q. 그렇게 팔아서 남나요?
“제품을 팔면 30%는 남겨야 한다는 주의예요. 3D프린터 소재인 필라멘트도 팔고 있는데, 다른 업체들이 1kg을 3만원에 팔 때 저흰 1만5000원에 팔았어요. 원가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 제품은 6~7달러정도에 수입해 오거든요. 마진이 나쁘지 않은 편이죠.”
Q. 신제품은 알리바바 등 중국 온라인쇼핑몰에서도 판매하실 예정이라고요. 짝퉁 걱정은 안되세요?
“그런 걱정들 많이 하죠. 하지만 그게 두려우면 중국엔 못 나가는 것 같아요. 저희도 처음엔 놀랐어요. 첫 제품 ‘마이스터’를 중국에 내놨을 때 2주만에 거의 비슷한 제품이 나왔어요. 한두 군데서 베끼는 게 아니라 수십 군데서 베끼기 때문에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제품을 지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많이 파는 게 목적이니, 걱정만 하기 보단 일단 나가보려고 해요.”
Q. 특허나 디자인을 출원해 권리를 보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존 제품은 디자인과 특허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신제품 카피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식재산권을 내고 시장에 진입할 수가 없어요. 지키려고 하기 보단 공격적으로 나가려고 해요. 빠른 속도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야죠.”
Q. 사업하면서 힘든 일 두 가지만 꼽아본다면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역시 돈 문제죠. 돈이라는 게 돌고 도는 건데, 가끔 틈이 생길 때마다 마음고생이 심해요. 두 번째는 사람이에요. 직원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부담이죠. 임금도 절대 밀려선 안 되고요. 직원은 한때 12명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10명이 함께하고 있어요.”
Q. 역시 사람 문제가 가장 힘들다고들 해요.
"직원들이 한꺼번에 그만둔 일이 있었어요. 그 직원들이 입사한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그 창업멤버로서 지분을 요구했고, 저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그 일로 틀어져 다 같이 회사를 그만두더군요. 그땐 정말 슬프고 힘들었죠. 지금은 뭐, 누가 나간다고 해도 ‘그 동안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정돈 생긴 것 같네요."
[3D박스①] 에서는 생생한 3D프린터 창업 준비 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보기
글 / 이혜원
(won@i-db.co.kr)| 작성기사 더보기
사진 /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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